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
영조는 모두가 알다시피 숙종과 숙빈 최 씨의 아들이며, 형인 경종으로부터 왕 워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즉위 기간 내내 숙종의 씨가 아니다 부터 경종을 죽였다는 왕위 정통성을 건드리는 헛소문에 시달렸던 주인공이 바로 '영조'입니다.
이런 정통성의 취약성과는 별개로 영조는 탕평책을 통해 훌륭하게 정권을 장악한 강한 왕권의 소유자입니다.
영조에겐 아들이 2명 있었습니다. 큰아들은 영조가 연 양군 시절에 얻은 효장세자 '이행'입니다. 효장세자는 숙종이 생전에 본 유일한 손자로 영조가 스물다섯에 본 아들이므로 그때 당시로서는 적당한 나이에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들이 영조가 즉위한 후 세자에 책봉되었다가 10살의 나이에 병으로 죽게 됩니다. 이 죽음이 몇 안 되는 조선왕실에 찐 독살로 의심되는 죽음이라고 합니다. 당시 대비 어 씨를 중심으로 한 남은 경종 지지세력이 영조에게 한 짓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 이후 7년간 영조는 아들을 얻지 못하다가 총애하던 궁인 출신 후궁 이 씨에게서 드디더 둘째 사도세자를 얻게 됩니다.
영조에 세 사도세자는 유일한 후계자임과 동시에 더 중요한 정치적 가치가 있었습니다. 바로 '삼종의 혈맥'이라는 것인데요. 삼종의 혈맥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영조의 아빠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3대를 말하는데 효종, 현종, 숙종입니다.
즉, 소현세자 사망 후 형 대신 세자가 되고 왕이 된 효종의 후손이라는 겁니다. 현종, 숙종에 대에 불거진 예송논쟁을 정말로 짧게 요약하자면 왕 워 정통성이 효종의 후송에게 있느냐 아니면 소현세자에게 있느냐고 묻는 논쟁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종의 후손들에 세 이 삼종의 혈맥으로 왕위를 잇는 건 굉장히 중요한 가치이자 영도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단서 이기도 합니다.
영조는 세제이던 시절 역모에 연루되어 죽을 뻔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영조를 구해준 것이 당시 대비이던 인원왕후인데 영조가 자신을 구해달라며 그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제가 죽으면 삼종의 혈맥은 어찌 잇겠습니까? 였다고 합니다.
당시 사도세자가 없었더라면 왕족 누군가를 입적해서 왕위를 잇게 했을 텐데 가장 가까운 왕족이 바로 소현세자의 후손들이었고 이로 인해 나중에 정치적 대혼란이 올게 당연했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세자가 태어나 드디어 삼종의 혈맥을 이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영특했던 사도세자는 영조의 바람대로 자라지 못했고 이로 인해 아버지의 미움과 압박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그런 기질이 있어서인지 둘 다인 건지.
사도세자는 역대 세자들 가운데 있었던 적 없는 아주 잔인무도한 짓을 저지르게 됩니다.
내관의 목을 잘라 들고 다니며 궁인들을 겁주고 후궁을 때려죽였으며, 자기 자식도 죽일뻔했다고 합니다. 사도세자가 죽인 사람이 무려 백여 명에 달했습니다. 문제는 당시 영조가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고령이었다는 점입니다. 내일 왕이 될지도 모르는 세자의 눈치를 보느라 누구도 제대로 세자가 저지른 이런 참담한 짓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나경언의 고변 등을 통해 결국 영조가 알게 되긴 합니다. 영조의 입장에서는 내가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살인을 저지르는 광기의 세자를 후계로 놔둘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세자에 세는 당시 4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장남은 요절했고, 적자이자 차남인 세손은 매우 영특했기에 이제 더 이상 사도세자는 유일한 삼종의 혈맥을 가진 후계가 아니게 됩니다.
다만, 문제는 세자를 살려둘 경우, 세자의 아들 중 하나가 왕이 되었을 때 그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도 불효를 해선 안 되는 게 조선의 성리학 질서였고 세자의 광증이 끝나지 않는 가면 이를 세자의 아들이 컨트롤할 수는 없게 되기 때문에 결국 영도가 죽인 결심을 했다고 본다고 합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죄를 고한 사람으로 두 명을 내세웠습니다 바로 사도의 두 명의 어머니 첫 번째는 바로 죽은 정성왕후 서 씨 (영조는 정성왕후가 꿈에서 나타나 세자의 죄를 알려줬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세자의 생모 영빈 이 씨입니다. 세자가 왕을 시해하려 했다는 것을 고변했는데요. 즉, 아버지를 죽게 한 사람을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로 둠으로써 추후 새로운 왕의 즉위로 인해 다가올 정치적 파장을 줄이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뒤주를 쓴 건 최대한 남의 손이 개입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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